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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 바쇼, 하이쿠와 야마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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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尾芭蕉

마츠오 바쇼

바쇼는 1644년 이가노쿠니 우에노(伊賀国上野) – 현재의 미에 현 이가 시(三重県伊賀市) – 에서 태어났습니다. 십 대 때부터 하이쿠를 짓기 시작하였고 이십 대 때는 교토에서 하이쿠 시인이자 고전문학 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키타무라 키긴(季吟)의 제자가 되어 하이쿠를 배웠습니다.
서른 살 이후에 에도 – 현재의 도쿄 – 로 가서 하이쿠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당시의 아호(펜네임)는 도세(桃青)였습니다.
1680년 겨울, 바쇼는 스미다 강 건너편 해안가에 위치한 후카가와(深川)라는 곳으로 이사를 갑니다. 이사간 집 정원에 그의 제자가 심은 바쇼라는 나무(바나나과)가 크게 자랐다 하여 그의 집은 바쇼안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바쇼라는 아호를 사용하게 됩니다. 사십 대가 되자 바쇼는 여행하면서 하이쿠를 짓는 기행문을 여럿 적습니다.
1689년 3월, 바쇼는 문인 가와이 소라와 함께 도호쿠・호쿠리쿠 지방 여행길에 나섭니다. 그의 나이(※) 46세였습니다.
바쇼와 소라는 5개월에 걸쳐 2400km 거리의 여정을 떠납니다. 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미노노쿠니 오가키(美濃国大垣) – 현재의 기후 현 오가키 시(岐阜県大垣市) – 를 끝으로 여행을 마칩니다. 이 여행을 바탕으로 쓴 『오쿠노 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는 5년 후인 1694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해는 바쇼가 생을 마감한 해이기도 합니다.
약 150일간의 여정 동안 데와노쿠니(出羽国) – 현재의 아키타 현과 야마가타 현 – 에도 머물렀었는데 그 중 지금의 야마가타 현에서 체재한 기간은 41일 동안이었습니다. 야마데라 릿샤쿠지(山寺立石寺)를 찾았을 적을 노래한 하이쿠
「시즈카사야 이와니시미이루 세미노코에(閑さや岩にしみ入る蝉の声)」
가 『오쿠노 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에 적혀 있습니다.
1694년 바쇼는 여행 중에 병에 걸려 오사카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51세였습니다. 유골은 그의 유언에 따라 비와 호(琵琶湖) 호토리 제제(ほとり膳所) – 현재의 시가 현 오츠 시 – 에 위치한 사찰 기추지(義仲寺)에 묻혀 있습니다.
바쇼는「쇼후(蕉風) : 바쇼류(芭蕉流)」라는 뜻」라고 불리는 하이쿠의 새로운 유파를 확립했습니다. 일본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인물 중에 한 명이며 『오쿠노 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는 일본 고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후루이케야 가와즈토비코무 미즈노오토(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는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하이쿠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백만 명의 일본인들이 취미로 하이쿠를 짓고 있습니다.

(※각주)일본도 근대 이전까지는 연령을 표기할 때 한국처럼 「세는나이」를 사용했었습니다. 세는나이란 태어난 날부터 한 살이 되고 그 후 새해마다 한 살을 더하는 연령계산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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